“‘천문학적이다’라는 말은 도대체 얼마나 큰 숫자일까?”
뉴스에서 종종 이런 표현을 만납니다. “천문학적인 재정 적자”, “천문학적인 손해액”. 그런데 이 말은 정확히 얼마나 큰 숫자를 뜻할까요?
이 표현은 막연히 “엄청 크다”는 감탄사가 아닙니다. 말 그대로 천문학, 즉 우주 규모의 숫자를 빌려온 비유입니다.

1. 인간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숫자의 한계
심리학적으로 인간이 직관적으로 구분할 수 있는 수의 범위는 수천~수만 단위까지입니다.
- 1만 원과 10만 원 → 체감 가능
- 1억과 100억 → 이미 감각이 흐려짐
- 1조와 100조 → 거의 동일하게 느껴짐
그래서 언론은 이 지점을 넘어서는 순간 숫자를 포기하고 “천문학적”이라는 단어를 호출합니다.
2. 1조 원을 우주에 비유하면?
1조 원은 1,000,000,000,000원입니다. 이 숫자를 시간으로 바꾸면 어떨까요?
- 1초 = 1원
- 1조 원 = 약 3만 1천 년
즉, 지금부터 시간을 거꾸로 3만 년 되돌아가면 동굴 벽화를 그리던 인류를 만납니다.
이 정도부터 이미 “역사적”이지만, 아직은 천문학적이지 않습니다.

3. ‘천문학적’이라는 표현이 진짜 어울리는 순간
천문학에서 다루는 기본 단위는 광년입니다. 1광년은 빛이 1년 동안 이동한 거리, 약 9조 4천억 km입니다.
이를 숫자로만 보면 감각이 사라지니, 이렇게 바꿔봅니다.
만약 1km를 1원으로 환산한다면, 1광년은 약 9조 원입니다.
그런데 태양과 가장 가까운 별까지의 거리는 약 4.3광년입니다.
즉, 가장 가까운 별 하나까지 가는 데도 수십 조 원짜리 숫자가 필요합니다.
4. 은하 하나 = 경제 기사로는 표현 불가
우리 은하에는 별이 약 1천억 개 있습니다.
만약 별 하나를 1원이라고 해도 은하 하나의 가치는 1천억 원입니다.
그런데 관측 가능한 우주에는 이런 은하가 약 2조 개 존재합니다.
계산을 멈춰야 하는 지점입니다. 이쯤 되면 숫자는 의미를 잃고, 우리는 오직 “천문학적”이라는 말만 남깁니다.

5. 왜 하필 ‘천문학적’일까?
천문학은 인간이 다루는 학문 중 가장 큰 수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분야입니다.
- 거리: km → 광년
- 개수: 수십 → 수천억
- 시간: 년 → 수십억 년
그래서 감당할 수 없는 규모를 말할 때, 인간은 자연스럽게 하늘을 빌려옵니다.


‘천문학적’은 숫자가 아니라 감각의 표현
“천문학적이다”라는 말은 단순히 크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직관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영역, 숫자가 아니라 우주적 비유로만 설명 가능한 지점을 가리킵니다.
다음에 뉴스에서 “천문학적인 금액”이라는 표현을 들으면 이렇게 떠올려 보세요.
“이건 지구의 숫자가 아니라, 별과 은하의 숫자에 가까운 이야기구나.”
그 순간, 숫자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우주의 크기를 빌린 언어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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