뭉크의 <절규> 속 붉은 하늘은 사실 ‘화산 폭발’ 때문이었다? – 기상학·지질학이 읽어낸 한 장의 명화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를 떠올리면, 사람보다 먼저 기억나는 것은 불타는 듯한 붉은 하늘입니다. 이 강렬한 색채는 오랫동안 작가의 불안, 광기, 내면의 공포를 상징하는 장치로 해석돼 왔습니다.
그러나 최근 미술사와 기상학, 지질학이 만나는 지점에서 하나의 흥미로운 질문이 제기됩니다. 저 붉은 하늘은 상상이 아니라, 실제 하늘이 아니었을까?

<절규>의 하늘은 왜 이렇게 비현실적으로 붉을까
뭉크 자신은 일기에서 이렇게 기록합니다. “해가 지고 있었다. 하늘이 갑자기 피처럼 붉어졌다.” 이는 단순한 은유라기보다, 관측 기록에 가깝습니다.
바로 그 배경에 놓이는 사건이 1883년 인도네시아 크라카타우 화산 대폭발입니다.

1883년, 지구 전체가 ‘색이 변한 해’
1883년 8월, 크라카타우 화산은 인류 역사상 손꼽히는 규모로 폭발했습니다. 이 폭발로 인해 막대한 양의 화산재와 에어로졸이 성층권까지 도달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이 화산재가 전 지구 대기 순환을 타고 퍼지면서, 수년간 전 세계의 하늘색을 바꾸어 놓았다는 사실입니다.
유럽과 북미에서는 노을이 유독 붉고, 보라색에 가까운 하늘이 자주 관측되었고 당시 신문과 일기, 기상 기록에도 이 현상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왜 화산재는 하늘을 붉게 만드는가
여기에는 명확한 기상학적 원리가 있습니다.
화산 폭발로 생긴 미세 입자는 태양빛 중 파장이 짧은 푸른빛을 강하게 산란시키고, 상대적으로 파장이 긴 붉은 계열의 빛만 우리 눈에 도달하게 합니다.
쉽게 비유하면 이렇습니다. 공기 중에 미세한 붉은 필터를 깔아둔 것과 같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해 질 무렵, 하늘은 현실감 없는 선혈 같은 색으로 물들게 됩니다.

뭉크는 무엇을 그렸는가: 감정인가, 기록인가
뭉크가 <절규>를 제작한 시점은 1890년대 초반. 크라카타우 폭발 이후 형성된 대기 변화가 여전히 유럽의 하늘에 영향을 주던 시기와 겹칩니다.
즉, <절규>의 하늘은 작가의 불안이 만들어낸 색이면서 동시에 그 시대 사람들이 실제로 바라보던 하늘일 가능성이 큽니다.
이 그림은 내면의 초상이자, 의도치 않은 기후 기록화인 셈입니다.

예술은 때때로 과학보다 정확하다
기상 관측 장비가 부족하던 시대, 화가와 시인은 하늘의 변화를 가장 민감하게 기록한 관찰자였습니다.
뭉크의 붉은 하늘은 공포를 과장한 장치가 아니라, 비정상적으로 변해버린 자연 앞에서 느낀 인간의 생리적 반응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절규>를 다시 볼 때, 이렇게 질문해 보자
“이 불안은 개인의 것인가, 시대의 것인가?” “저 붉은 하늘은 감정의 색인가, 지구의 색인가?”
한 장의 그림은 말이 없지만, 그 뒤에는 화산, 대기, 빛, 그리고 인간의 감각이 겹쳐 있습니다.
뭉크는 절규했지만, 사실 그날 가장 크게 소리친 것은 하늘 그 자체였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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